14박 15일 유럽여행기 (7)
나는 자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깨우셔서 일어나게 되었다. 나는 씻고 준비를 한 다음 같이 나갔다. 물론 형은 피곤해서 잤다. 우리는 바깥으로 나와 사진촬영을 여기저기서 하였다. 가면서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베네치아 역을 본 다음 가게도 보고 거리도 관광하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머니의 옷에 새똥이 묻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 미리 대처하여 닦아낼 수 있었지만 자국이 남게 되었다. 어쨌든 거리를 본 다음에 숙소로 다시 들어와 식사를 한 다음에 짐을 모두 챙기고 준비한 후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나왔다. 역은 가까웠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짐을 들 때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 것을 감안하고 끝까지 건너 간 다음에 바로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표를 끊고 열차를 타기 위해 잠시 대기했다 이동하였고. 우리는 잠시 후 탑승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타는 열차는 고속열차로써 최종 목적지인 피렌체(florence)에서 베네치아까지 이 차를 이용하면 2시간이나 걸린다. 그동안 기행문을 적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런데 피렌체로 가는 데도 여러 번 경유해서 갔다. ‘산타마리아 노벨라’라는 역에서 내린 다음 (종착역) 건너가서 일반열차로 갈아탄 이후 바로 1정거장을 가야 한다. 우리는 열차에 승차했고 이후 곧바로 내렸다. 우리가 도착한 역은 ‘캄포디 마르테’라는 역. 우리는 짐을 내리고 역에서 나온 다음 바로 걸어갔다. 왜일까... 숙소가 300m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그 쪽까지 이동하였다. 그 숙소는 형이 3번째로 가는 곳이지만 나머지는 처음 간다. 바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으로 이름은 피렌체 드림이었다. 우리는 잠시 기다렸으나 주인이 와서 만나게 되었고 가족은 결국 2층으로 배정받게 된다. 우리는 짐을 들고 올라가 짐을 내려 놓고 난 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여행을 가게 되는데.. 잠시 쉬었다가 준비하고 내려와 다음 장소로 출발하게 되었다. 이 때 민박집 부인이 교회로 가신다고 하여 같이 출발하게 되었다. 자동차를 타고 갔는데 거리를 드라이브를 하고 우피치 미술관 근처에서 내렸다. 우리는 다른 장소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번에 가는 목적지는 바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었다. 사실 우리가 내린곳은 피렌체 역사지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피렌체는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걸작이 곳곳에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피렌체 역사 지구에는 피렌체의 상징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단테의 생가,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궁, 미켈란젤로 광장 등이 있으며 메디치 가문이 기증한 우피치 미술관도 만날 수 있다. 우피치 미술관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뿐 아니라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주요 작품까지 소장하고 있어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우리가 여기서 가야 할 곳은 두오모 성당이지만 그 전에 먼저 간 곳은 성당인데 크기가 큰 ‘산타 크로체 교회’ 우리는 사진을 찍고 난 다음 안에 구경을 하였다.
이 성당은 1294년 아르놀포 캄비오가 기공, 1442년에 헌당된 고딕 양식의 성당. 주간(柱間)을 넓게 잡고 바실리카식 장식 천장을 채용했으며, 구조상의 특징은 시에나 대성당에 가깝다. 당내에는 단테, 미켈란젤로 등 이탈리아의 유명인들의 기념묘가 많았다. ‘피렌체의 판테온’이란 이름도 있다. 페르치 가(家) 예배당과 발디 가 예배당에 있는 조토의 벽화를 비롯하여 타데오 가디, 기타 벽화, 도나텔로의 『십자가 상』과 『수태고지』 부조 등, 14~15세기의 예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브루넬레스코의 파치 가(家) 예배당(1429~46)도 구내에 있다고 한다. 1966년의 수해로 인해 당내에 있던 치마부에의 『십자가 상』이 큰 손상을 입었다. 또한 이 성당 안에는 조토작(作)의 벽화 《두 요한》과 《성(聖)프란체스코전》의 일부가 남아 있다. 안에 들어가니 한쪽이 복원공사 중이었다. 어쨌거나 다 관람한 다음 그 후에야 나와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싸뇨리아 광장으로 향했는데 주변이 미술관이라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특히 일본, 중국, 미국,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많았다. 여기는 꽤 많이 모이는가 보다. 물론 미술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어쨌거나 주변의 동상에서 촬영한 다음. 들러서 구경한 다음 여러 성당을 보고 다리로 이동했다.
이 다리의 이름은 ‘베키오 다리’이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州) 피렌체에 있는 다리로, 아르노강 위의 다리 중 오래된 것이다. 1345년에 건설되었으며 로마시대의 마지막 다리라고 한다. 1944년 연합군의 추격을 받던 독일군이 강 양쪽 기슭의 집을 모두 파괴했으나 베키오 다리만 남겨두었다고 한다. 원래 이 다리에는 푸줏간, 대장간, 가죽 처리장 등이 있었는데 1593년에 페르디난도 1세가 시끄럽고 악취가 난다며 모두 추방하였지만 그 대신 금세공업자들이 다리 위의 상점에 들어왔다. 이후로 지금까지 베키오 다리의 금세공 상점들은 다양한 보석을 판매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판매하는 수공예 제품들은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전해진다.
상점들이 즐비한 곳 같은데.. 어쨌든 사진을 찍고 다른 장소로 향했다. 아니. 식당부터 먼저 갔다. 뇨끼(감자 수제비 비슷),카르보나라 등. 맛있게 먹었다. 그 다음에 피렌체에서 유명한 성당으로 이동했으니...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흔히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라고 부름)
사실 성당 명칭은 ‘꽃다운 성모마리아 대성당’이란 뜻.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기공한 고딕성당이라고 한다, 그 내부에는 각각 5개의 제실이 있으며. 외벽은 화려한 색 대리석으로 복잡한 장식을 하였다. 1334년 옆 건물인 조토가 종탑을 기공하였고, 1357년 평면규모를 확장하여, 1418년의 콩쿠르에서 브루넬레스코의 안을 채용하여 1420~34년에 건조, 정탑(頂塔)은 1432~6년에 완공되었다. 서쪽 정면은 1875~87년에 완성했지만 돔 기부의 갤러리 등에는 미완성된 부분도 있기는 하다. 우린 그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북쪽의 만둘라 문은 14, 15세기의 저명한 조각가들의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 중앙의 제단부분에는 기베르티 작인 제노비우스(피렌체의 수호신)의 청동상과 베네딕트 다 마이야노 작(作)의 책형상(磔形像)이 있고, 북쪽 수량 제실에는 미켈란젤로 만년의 『피에타』상이 있다. 신랑부 북쪽 벽에 그려진 우첼로의 『존 호크우드 기마상』(1436), 카스타뇨의 『나콜로 다 트렌티노 기마상』(1456)의 프레스코 벽화도 유명. 서쪽 정면 앞에는 산 조반니 세례당이 있고, 또 대성당 동쪽의 부속보물관에는 성구실(聖具室)용으로 만든 도나텔로와 루카 델라 로비아의 2개의 대리석 칸트리아 합창단(모두 1430년대) 등 대성당 관계의 미술품이 수장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안쪽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 다음에 옆 건물인 조토의 종탑을 거쳤으나 보지 않고 갔다
조토의 종탑(이탈리아어: Campanile di Giotto)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종탑이다. 조토가 설계하였다. 1334년 제작을 시작하여 조토가 죽은 후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와 탈렌티가 1359년에 완성했다. 높이는 약 85m이다. 414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높이 84m의 꼭대기에 도달하면 두오모의 웅장한 모습과 피렌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산타 마리아 노벨라 중앙역에서 도보 10분, 두오모 바로 옆에 위치한다.
다음 목적지인 지오반니 세례당에서는 바깥에서 찍었다. 특히 지오반니 세례당은 천국의 문으로 유명하며 85m나 된다. 요한을 수호성인으로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라고..
그 다음에 우리는 걸어서 거리,풍경 등을 찍은 다음에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후에 피사의 사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는 피사 행 열차를 타고 떠났다. 그런데.. 1시간이나 걸린다고 형이 말했다. 그래서.. 이동하여 표를 끊고 열차를 탔다. 우리는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청했다. 결국 피사는 3시쯤 도착했다. 그 후에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였다. 몇 정거장까지 지나서야 우리는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건넌 다음 성벽으로 들어갔다, 그 곳이 입구이다.
이탈리아의 주중 하난데 서부쪽에 있으며 토스카나 주의 피사에 있다. 우리는 바로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물론 보자고 기념품점도 들렀는데 피사의 사탑모형도 팔고 있었다.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피사의 사탑. 달랑 탑만 있는 게 아니라 성당 및 세례당. 묘까지 존재한다. 우린 일부만 보았을 뿐. 양식은 로마네스크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탑은 1174년에 착공되었던 이 곳은 균형에 맞지 않는 토지로 지반이 내려앉아 조금씩 기울어져서 잠시동안 관광객 입장이 금지되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공사를 재개해 3단계 공사 끝에 완공 되었다. 공사가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우는 것은 계속 되어 무너지게 될 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전세계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것이 계속되자 결국 1990년.내가 애기 때이다. 그 때에 공사로 중단하게 되었다. 그 동안은 관광객의 출입을 통제. 그리고 결국 10~11년간의 장기간의 공사 끝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만약에 공사를 안했으면 무너졌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아니겠나? 그래도 공사를 마쳤다니 다행 이라고 생각한다.
이 건물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음과 동시에 7대 불가사의중 하나라고 한다. 가족은 사탑 안으로도 들어가려고 했으나 돈을 내는 바람에 그냥 안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면 피렌체 전경이 보인다는데 왜 안한 건지 모르겠다.
탑 옆 건물에 있는 것이 바로 피렌체 두오모 성당. 이 성당은 1068년에 착공하여서 50년만에 완공된 역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 또 세례당도 있다. 이 건물 역시 양식이 혼합되어진 건축물로 14세기에 완공했다고 전해진다.
크기도 커서 대성당이라고도 부르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미사도 한다. 다만 우리는 시간상으로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여기서도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 성당. 공중에서 보면 십자 모양이라고 한다. 진실인지? 맨 뒤에 있는 곳이 바로 납골당이다. 우리는 저런데 안보고 갔는데.. 힝..
저흰 이 탑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3 건물이 합쳐져서 대 성당을 이루게 되는 거다. 나도 인제서야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한 건물만 있는 줄 알았더니.. 놀랄 따름.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오는데... 소매치기가 엄마 가방을 연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대응을 하였다. 그래서 포기했다. 나도 했으나 알려주는 바람에 대처했다. 이후부터 프랑스 마지막 날까지 항상 경계를 풀지 않게 된다. 어쨌든 우리는 역으로 다시 이동해 다시 열차를 타고 갔다. 그 후에 다시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 도착하였다. 그 후에 역에서 걸어 나와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렇다! 우리가 이번에 가는 곳은 미켈란 젤로 언덕이라고 하는 곳으로 피렌체에서 전경이 보이는 곳이라고 한다. 그 때가 저녁이 넘은 시각이었다.
이 곳은 니콜로 다리 건너 아르노강(江) 오른쪽에 있다. 1871년에 조성된 곳이며, 광장 중앙에 미켈란젤로 탄생 4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다비드 상의 복제품이 있다고 한다. 진품은 미술관에 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피렌체의 전경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아르노강과 그 위를 지나는 유서 깊은 베키오 다리,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피렌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는 그 곳에서 그림도 보고 풍경에서 찍은 다음 무대에서 한번 보다가 다시 올라와서 버스를 탔다. 몇 정거장을 지나 우리는 한인 숙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 시각이 밤이었다. 피렌체와 피사를 한 번에 구경하니.. 참으로 재미있는 하루였다.